댜틀로프 고개 사건, 1959년 수사와 2020년 결론
댜틀로프 고개 사건, 1959년 수사와 2020년 결론
1959년 1월 말, 이고리 댜틀로프가 이끄는 등산대가 소련 북부 우랄산맥으로 들어갔다. 1959년 형사사건 기록에는 최종적으로 9명이 산악지역에서 사망한 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됐다고 적혀 있다. 일행 가운데 유리 유딘은 건강 문제로 중도 이탈했고 사망자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행은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이 아니었다. 2021년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된 연구는 이들을 경험이 있는 러시아 등산가 집단으로 설명한다. 연구진은 이들이 1959년 2월 초 홀라트샤흘 산의 경사면에 텐트를 설치한 뒤 모두 사망했다고 당시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다.
정확히 어떤 순간에 문제가 시작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당초 일행은 예정된 시기까지 귀환하지 않았다. 이후 수색이 시작됐고, 1959년 2월 26일 수색대가 홀라트샤흘 북동쪽 경사면에서 텐트를 발견했다. 당시 현장조사 기록에는 텐트 아래에 스키가 깔려 있었고 배낭, 신발, 의류, 식량, 취사도구와 개인 소지품 상당수가 내부에 남아 있었다고 기록됐다.
텐트의 상태는 수사의 핵심이 됐다.
1959년 4월 실시된 법과학 감정에서 텐트에는 길이 약 32cm, 89cm, 42cm의 절단 흔적 세 곳이 확인됐다. 감정인 겐리에타 추르키나는 현미경으로 천의 손상 방향을 조사한 뒤 세 절단부가 모두 텐트 안쪽에서 날붙이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결론 내렸다. 이는 추정이 아니라 당시 형사사건에 편철된 감정 결과다.
수색대는 텐트에서 숲 방향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흔적도 확인했다. 당시 수색 기록에는 일부가 신발을 신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판단되는 발자국이 있었다고 남아 있다. 텐트 안에는 신발과 방한 장비가 그대로 있었다.
왜 영하의 산악지대에서 숙련된 등산대가 신발과 상당수 장비를 두고 텐트를 빠져나왔는지가 사건의 첫 번째 공백이었다.
첫 시신들은 텐트 아래쪽 숲에서 발견됐다. 이후 수색 범위가 확대되면서 추가 시신들이 발견됐고, 마지막 네 명은 눈이 녹기 시작한 뒤 계곡 지형에서 발견됐다. 1959년 수사자료에는 시신 발견 위치와 부검 결과가 각각 기록돼 있다.
사인은 모두 동일하지 않았다.
2020년 러시아 검찰 재조사 결과를 보도한 타스 통신에 따르면 검찰은 졸로타료프, 두비니나, 티보 브리뇰을 제외한 사망자들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을 저체온증으로 판단했다. 나머지 세 사람에게서는 중대한 외상이 확인됐으며 검찰은 그 손상이 눈사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압박성 손상과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1959년 부검기록에는 류드밀라 두비니나의 흉곽 손상과 니콜라이 티보 브리뇰의 두개골 손상 등이 기록돼 있다. 당시 수사자료에는 세묜 졸로타료프에 대한 별도의 부검 기록도 남아 있다.
두비니나에게서 혀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여러 추측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제시된 자료만으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혀를 제거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시신이 발견되기까지 오랜 기간 계곡의 물과 눈에 노출됐다는 점을 포함해 사후 변화 가능성이 제기돼 왔지만, 정확한 소실 과정은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의복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도 사건의 군사실험설과 연결됐다. 1959년 사건 자료에는 실제 방사선 검사 문서가 존재한다. 다만 방사선 검출 사실만으로 군사무기가 등산대의 사망 원인이었다고 판단한 공식 수사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당시 수사는 결국 명확한 범죄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이후 UFO, 군사실험, 공격, 특수한 바람 등 여러 가설이 제시됐지만, 2021년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 논문은 이런 설명들을 과거에 제기된 가설로 분류했다. 해당 논문 자체도 특정 인물이나 군사작전을 범행 원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사건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반론은 눈사태설이었다.
초기에는 반대 근거가 있었다. 2021년 연구진이 정리한 기존 반론을 보면 텐트 주변에서 뚜렷한 대규모 눈사태 흔적이 보고되지 않았고, 텐트 위쪽 경사도가 일반적인 눈사태 발생 조건보다 낮게 보였으며, 일부 사망자의 흉부와 두개골 손상이 전형적인 눈사태 피해와 다르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그렇다면 눈사태가 없었다는 초기 인상과 텐트를 긴급히 탈출한 행동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가.
러시아 검찰은 사건 발생 60년 뒤 다시 현장을 조사했다. 2019년부터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는 자연현상에 초점을 맞춰 여러 가설을 검토했고, 2020년 7월 11일 러시아 검찰 관계자 안드레이 쿠랴코프는 눈사태가 사건의 원인이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일행이 눈사태 때문에 텐트를 떠났고 이후 텐트로 돌아오지 못하면서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범죄 개입 가능성도 배제했다. 2020년 발표에 따르면 조사팀은 주요 가설들을 검토했고 최종적으로 자연현상에 의한 사고라는 판단을 내렸다.
눈사태설은 이후 별도의 물리학 연구에서도 검토됐다.
2021년 요한 가우메와 알렉산더 푸즈린은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눈판 눈사태 모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등산대가 텐트를 설치하기 위해 경사면의 눈을 잘라냈고, 이후 강한 바람이 위쪽에 눈을 지속적으로 쌓이게 했을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제한된 규모의 눈판이 미끄러질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 모델에서는 대규모 눈사태가 아니더라도 텐트 내부 사람들에게 심각한 외상을 줄 수 있었다.
이 연구는 눈사태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직접 증거를 새로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연구진도 논문에서 눈판 눈사태가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으로 가능한 메커니즘이라고 제시했다.
이후 연구진은 현장 조사를 이어갔다. 2022년 같은 학술지에 실린 후속 보고에서는 댜틀로프 고개 주변에서 실제 눈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며, 텐트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 위쪽 경사가 눈사태 발생에 충분한 조건을 갖출 수 있다는 현장 자료가 제시됐다.
1959년 텐트 감정과 2020년 검찰 조사 결과를 함께 놓으면 적어도 한 가지 행동은 설명된다. 일행은 텐트 안에서 천을 잘라 밖으로 빠져나왔다. 1959년 감정 결과가 이를 확인한다. 러시아 검찰은 그 행동의 원인을 눈사태 위험에 대한 긴급 탈출로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밤에 정확히 어느 정도의 눈이 움직였는지, 누가 먼저 위험을 인지했는지, 일행이 텐트로 돌아가려다 어느 순서로 사망했는지는 직접 목격자가 없어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확인 가능한 공식 판단은 2020년 러시아 검찰이 제시한 눈사태와 이후의 저체온 및 외상이다. 2021년과 2022년의 과학 연구는 그 설명이 해당 지형에서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근거를 추가했다.
1959년 2월 그 밤에 일어난 행동을 초 단위로 복원할 자료는 없다. 남아 있는 것은 안쪽에서 절단된 텐트, 장비를 남겨둔 탈출,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발견된 9명의 시신, 그리고 수십 년 뒤 눈사태를 원인으로 판단한 재조사 기록이다. 텐트를 떠난 정확한 순간부터 숲 아래에서 각자가 마지막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까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